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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스탠포드 대학교에 다니던 대학원생 두 명이 머릿속에 떠오른 간단한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을 때는, 그 작은 아이디어가 지금처럼 수 십억 달러에 이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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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 맨, 찰스배비지
1.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

17세기에 나타난 기계식 계산기에 이어 1932년 영국의 천재 찰스 배비지는 디퍼렌셜 엔진이라는 새로운 계산기를 설계하고, 10년 뒤에는 컴퓨터의 원리가 들어있는 분석 엔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성격이 괴팍해서 화제를 만든 배비지는 너무 앞선 아이디어를 내놓아 꿈을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정작 컴퓨터에 이르는 길목에는 큰 발자취를 남겼다.
 
  • 글쓴이 : 김선아(badajoa@hwlab.com)  
  • 자료출처 : 하드웨어랩 - http://www.hwlab.co.kr  
  • 날짜 : [2002-07-03 12:09:03]

  • 1.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
  • 2. 증기기관을 이용한 계산기 만들어
  • 3. 수공업적 방식 한계에 부딪쳐
  • 4. 컴퓨터 탄생의 터닦아
  • 5.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 맨

  • 찰스 배비지의 생애는 괴짜라는 한마디말로 요약된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2년 뒤인 1791년 런던 남쪽의 작은 도시에서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871년 80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잇따라 천재다운 번뜩이는 머리와 상식에 어긋난 처신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중년이후 한 시절 그는 이름난 수학자와 색다른 디퍼런스 엔진을 개발중인 부유한 발명가로 런던 사교계의 명물이었다. 그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는 진화론의 찰스 다윈, 소설가 찰스 디킨스,미국의 시인 헬로 롱펠로우등 명사들도 자주 참석했다.

    윌리엄 위즈워드의 뒤를 이어 계관시인이 된 알프레드 테니슨도 한동안 배비지가 여는 토요일 만찬회에 나타났다. 그 무렵 테니슨이 쓴 시중에

    1분마다 한사람이 죽고
    1분마다 한사람이 태어난다.

    는 구절이 있었다.

    괴짜이고 완벽주의자인 배비지는 이 시를 물고 늘어졌다.
    "이런 계산이면 세계 인구는 영원히 균형상태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세계 인구가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요. 그래서 귀하의 뛰어난 시를 다음 출판때는 다음과 같이 바로잡으면 어떨까요?
    ============================
    모든 순간에 한사람이 죽고
    1과 1/6 사람이 태어난다.
    정확한 숫자는 1.167명인 것을 덧붙여 두지만, 음률의 범칙에 따라 양보할 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
    화가 난 테니슨은 자기의 시를 이렇게 고쳤다.

    =============================
    모든 순간에 사람이 죽고
    모든 순간에 사람이 태어난다.
    =============================

    배비지는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강했다. 장난감을 사주면 내부 구조를 알고 싶어했고 곧 분해했다. 그는 몸이 약했으나 머리가 아주 좋았다.10대 초반 수학에 미쳐 한밤중에도 문제를 풀었고 발명에 몰두하여 물 위를 걸을수 있는 장치를 만든다고 열을 올리기도 했다.
    학교교육 대신 개인 교습를 받은 배비지는 1810년 19세 때 수학과 화학을 배우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진학했다. 아이작 뉴튼이 다닌 명문 칼리지이다.

    그는 금새 수학 교수들이 실력이 자기만 못한 것을 알아차리고 크게 실망했다. 배비지는 뜻맞는 친구들과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더욱 현명하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서약했다.

    이들은 곧 해석협회를 만들고 미분에 관한 기호에서 뉴턴의 방식보다 독일의 라이프니츠 방식이 더욱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영국과 독일의 자존심이 걸린 이 논쟁에서 배비지와 친구들은 합리를 앞세워 독일편에 섰고, 끝내는 dx처리를 앞세워 dx처럼 표시하는 라이프니츠 방식으로 바꾸게 하는데 성공했다.

    1814년 23세이던 배비지는 너그러운 성품을 가진 금발여성과 결혼했지만 남편으로서는 제멋대로여서 배비지 부인은 크게 마음을 상할때가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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